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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최고의 스타를 기억하나요?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88년 서울 올림픽 역도 60kg 급에서 여섯개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터키의 '포켓 헤라클레스' 나임 슐레이마놀루가 지난 18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의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고 전해졌다.


터키언론에 따르면 그는 2009년부터 간 부전에 시달렸으며 지난달 간이식 수술을 받았으나 몸 상태가 악화돼 결국 숨을 거뒀다고 한다. 

레쳅 타이프 에르도간 터키 대통령이 그를 병문안하기 위해 찾아 병원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운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그의 죽음은 생중계로 전국에 알려졌고 한때 터키인들의 영웅이었던 그의 죽음을 다 함께 애도했다고 전해졌다. 


그는 88서울 올림픽에서 60kg급 인상에서 자기 몸무게의 2.5배 용상에서는 3.18배를 들어올렸다. 그는 인상 1차 시기에서 145kg을 들어 올림픽 신기록(종전 130kg)을 세운 뒤 2차 시기에서는 150.5kg으로 첫 세계신기록을(종전 150kg) 이어진 3차 시기에서 152.5kg을 들어 다시 한번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는데 성공했다.


용상에서도 1차 시기에 175kg으로 올림픽 신기록(종전 160kg)을 세운 그는 2차 시기에서 188.5kg을 들며 세계신기록(종전 기록도 그가 터키로 망명하기 전 불가리아에서 세운 188kg이다.)을 경신 했으며 마지막 3차 시기에서 190kg을 치켜올렸다. 인상에서 2개, 용상에서 2개의 신기록을 수립하고 인상과 용상을 더하는 합계에서도 341kg, 342.5kg으로 2개의 세계신기록(종전335kg) 더해 한 대회에서 총 6개의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의 금메달은 터키가 24년만에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이기도 했다.


불가리아판 '창씨개명'을 피해 터키로 망명한 약소민족의 희망 


10세 때 역기에 입문한 그는 12세에 불가리아의 스포츠영재학교에 입학, 14세 때 당시 합계 세계최고기록보다 2.5kg 가벼운 기록을 들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불가리아 내 소수 민족 터키계였던 슐레이마놀루는 불가리아가 84년 소수민족 동화정책으로 터키어 사용을 금지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하면서 선수 인생에 급변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가 18세였던 1985년에 남자 역도 60kg급 세계 기록을 세우자 이듬해 불가리아 정부는 슐레이마놀루에게 불가리아식 이름인 '나음 슐레이마노프' 라고 인쇄된 새 여권을 발급함과 동시에 언론을 통해 "이름을 바꾼 슐레이마노프가 불가리아식 이름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거짓 기사를 내며 소수  민족의 영웅이었던 그를 앞세워 창씨개명을 홍보하고 나선다.


이에 불가리아 내 터키계는 그에게 큰 실망감을 드러냈고 그는 86년 11월 호주 멜버른 월드컵 대회에서 팀을 이탈 터키로 망명했다. 멜버른 주재 터키 영사를 통해 영국 런던으로 이동한 그를 위해 터키 수상이 전용기까지 내줬으며 터기 정부는 이후에도 불가리아 정부와의 비밀협상을 통해 1백만 달러를 지급하고 그의 발에 채워졌던 국제대회 출전금지 족쇄를 푸는데 성공했다. 그는 터키로 망명한 후에 터키 수상의 양자로 입적되고 여섯채의 집이 주어지는 등 국민적인 영웅대우를 받았지만 달리진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연습을 계속 했으며 1987년 한해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뒤 나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대기록을 달성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역도 역사상 인상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몸무게 2.5배 이상을 들었으며 용사에서는 자신의 몸무게의 3.18배를 들며 "사람은 자신의 몸무게 3배 넘게 들 수 없다"는 통념까지 깼다. 


이후 은퇴를 선언했던 그는 터키 정부의 간청에 1991년 다시 돌아와 92년 바르셀로나, 96년 애틀란타 올림픽까지 역도 사상 최초로 올림픽 3연패에 성공한다.



도핑으로 얼룩진 역도계, "슐레이마놀루 그 또한 약물러?"


그의 타계 소식은 주요 포탈란에 잠깐 이나마 메인으로 소개되며 한국으로도 전해졌다. 그런데 그 기사에는 "그는 훌륭한 선수였지만 동시에 약물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사례라고 말하며 그가 생전 자신 스스로도 약물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댓글"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베플이 선정됐다. 


슐레이마놀루가 간 경화 악화로 사망한 것은 사실이고 약물의 부작용으로 간 기능 이상을 초래하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약물들이 있지만 그 중 보디빌더들이 근육강화를 위해 많이 사용하며 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미국의 벤 존슨 그리고 메이저리그의 배리 본즈 등 유명 스타들이 사용한 것으로 유명해진 스타노조롤을 살펴보도록 하자.


스타노조롤은 정상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에 비해 짧은 기간 큰육을 빠르게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며 훈련으로 인한 피로와 고통을 줄이는 데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줬다.


그러나 강력한 효과와 동시에 남성의 가슴 확장 및 심근경색과 뇌졸증 그리고 심장마비의 가능성을 높이며 간 기상 이상  탈모와 피부병등 상당한 부작용을 동반한다.


올림픽 역도에서 3연패를 일군 선수는 슐레이마놀루 무툴루(터키) 파로스 디마스, 아카키오스 카키아스빌리스(그리스) 등 4명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약물복용 의혹에 시달렸으며 실제로 무툴루는 금지 약물이 적발되어 2년 자격 정지를 받았으며 또한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의 김민재 선수가 8위를 차지했지만 이후 1,2,3,4,6,7가 도핑테스에 걸려 뒤늦게 은메달을 받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도핑 문제는 계속되어 올 10월달에는 러시아,중국,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벨로루시,몰도바,카자흐스탄,터키,우크라이나 9개 국가가 1년간 자격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현재 역도는 도핑 문제로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 선수 상한이 대폭 줄었으며 IOC는 도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역도 종목이 오는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국내와 구글 등 포탈 사이트를 검색해도 슐레이마놀루 본인이 금지 약물을 복용했다고 인정한 사실을 찾을 수가 없다. 역도계에 금지약물이 만연해 있다는 것은 사실로 밝혀졌고 그가 활약했던 과거에는 지금처럼 도핑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그가 도핑에 적발되지 않은 것일수도 있고 그가 간 겅강 악화로 사망한 것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 슐레이마놀루의 모습을 살펴보면 현역 시절과는 달리 상당히 살이 많이 찐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역 시절 탐 크루즈를 닮은 외모로 그는 '리틀 탐 크루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었다. 많은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 현역 때 운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푸는 것처럼 그도 은퇴 이후에는 꾸준한 운동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쓸쓸하게 은퇴한 이후 터키 정계에 도전했지만 선수 시절과는 달리 계속해서 낙선을 거듭하게 된다. 흔히들 화려한 스타들 이면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감과 극심한 스트테스가 숨어 있다고 한다.


 

쇳덩이가 아닌 한떄 유럽을 호령했던 터키인들의 자손심을 들었던 슐레이마놀루


그 시절 그의 기록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것이었으며 그의 행동과 한마디는 당시에 핍박받는 약소민족에게 용기와 희망이었다. 그는 메달 획득 후 바벨의 한쪽에는 터키의 20년 금메달 염원을 담았으며, 바벨의 나머지 한쪽에는 세계 평화에 대한 바램을 담았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올림픽 이후 돌아온 터키의 귀환식에서는 "이 메달은 나의 것이 아닌 터키 국민의 메달이다"라고 포효하며 불가리아내 소수민족 박해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한다.  


그는 88올림픽 MVP였던 크리스틴 오토, 재키 조이너와 함께 가장 많은 인기와 이슈를 끌어던 선수였다. 걸리지 않았을 뿐 그가 약물러 일수도 있다. 하지만 선수로써 억접뿐만 아니라 그 당시 고통받던 자신의 민족들에게 희망을 줬었던 선수의 마지막이 단순한 심적,정황상 증거만으로 인한 댓글로 인해 '약물러'로만 기억되기에는 아까운 스포츠를 넘어선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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