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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주년 삼일절,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배우는?

3.1절을 맞이해 김지석씨가 독립운동가 집안이라는 게 다시 한번 화제인데요.


배우 김지석씨의 조부는 독립운동가 김성일 선생님입니다. 

김성일 선생님은 김구 선생님의 제자로 1916년 중국 봉천에서 독립의용단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했으며

1932년에는 윤봉길 의사와 함께 체포되어 4개월간 고문을 받았던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요.

김지석씨는 지난 2015년 해피투게더에 출연해 독립운동가인 할아버지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공개하기도 했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이름은 김온양, 둘째 큰아버지의 이름은 김장충, 첫째 큰아버지의 이름이 김북경 이라는 것을 공개하며


각가 태어난 곳의 지명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밝혔는데요. 

이어, 그는 "사촌형 이름은 김런던" 이라고 밝히며 자신의 형은 세 살까지 '김신사'였지만 후해 김반석으로 개명했다고 밝히며

자신 또한 부활절에 태어나 '김부활'이 될 뻔했다고 말하며 폭소를 자아냈었습니다.


아무래도 독립운동가셨던 할아버지께서 이곳저곳 지역을 옮겨 다니며 활동을 하시다보니 생겼던 에피소드 였던 것 같습니다.


연예계에는 김지석씨 말고도 '독립투사'의 후예들이 많은데요.

신해철씨의 외증조부(외할머니의 아버지)는 '우문 이상구'선생으로 구한말 육군대장 출신에 고종황제의 호위무사출신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상해 일본영사관에 폭탄을 던지는 등 독립운동을 펼치다 3.1운동 이후 자진체포됐으며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일찍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009년 故 신해철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직접 자신의 외증조부에 대한 글을 올렸었는데요. 홈페지인 '신해철닷컴' 게시판에 '하는 수 없이 인증, 우리 외증조부'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사실 외증조부 얘기를 평생 안 하려고 했다. 하지만 국익을 위해서라지만 외세에 아부함이 지나치다 하여 질타를 받던 일개 국회의원 나부랭이에게 이 나라를 나가라는 둥 말라는 둥 같잖은 소리를 듣자 짜증이 나, 할아버지 얘기를 꺼내게 됐다"고 사진 공개 이유를 밝혔습니다. 


신해철은 이어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욕은 부모 욕, 조상 욕"이라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왜놈들에게 고문을 받아 대가 끊겼다는 얘기에 인터넷에서 '고자' 운운하는 막장 놈들을 뭣 하러 상대하겠냐마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몇 자 쓴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외증조부의 사진을 공개하고 외증조부 탄신 100주년 기념식을 위해 발간 된 책자와 훈장, 비석 등을 설명한 뒤 "우리 외할머니의 아버지인데, 3.1운동 이후에도 체포가 되지 않자 왜경들이 친척들을 차례로 잡아가는 바람에 자진 출두하셨다""당시 어린 딸 하나만 두고 계셨던 할아버지는 오랜 모진 고문 끝에 육체와 정신이 완전히 폐인이 되신 후에야 풀려나셨다"고 전했으며 이어 그는 "그리고는 자손과 동지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하시며 스스로 굶어 돌아 가셨다""졸지에 고아가 된 우리 외할머니는 변변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신분도 더 낮고 고아나 다름없는 우리 외할아버지에게 버려지듯 출가하셨다"고 전했습니다. 


신해철은 또한 "우리 사회의 3D직종에서 너무나 흔히 보게 된 '조선족'들이 항일 무장운동세력의 후손일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들의 촌스런 말투를 개그의 소재로 삼거나 그들을 함부로 대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며 조선족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전했었습니다. 


신해철씨와 가수 서태지씨는 6촌 친척이니(외가쪽) 서태지씨도 독립운동집안의 후손이 되는 셈이네요.

(서태지씨의 전 부인인 이지아씨가 친일파의 후손인 점도 아이러니하네요.)

배우 박환희씨 또한 해피투게더에서 외조부가 독립운동가 하종진 선생임을 밝혔었습니다.

'항일투쟁 하시다가 서대문 형무소에 가셨다" "저 같은면 저렇게까지 못할 것 같다. 대단하신 것 같다"라고 말하며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냈었는데요.


하종진 선생은 1919년 3.1운동날 경남 함양에서 태극기를 나눠주는 등의 활동을 했으며 상해에서 폭탄을 들여와 대구 관청 폭파 시도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90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배우 배성우씨와 축구해설가 배성재씨의 외조부 역시 독립운동가 신영호 선생으로 알려졌습니다.

신영호 선생은 19193·1운동 당시 경성중앙학교에 재학하던 중 독립선언서를 입수하고 귀향한 뒤, 39일 청주농업학교 기숙사로 가서 서울의 상황을 알리고 만세 시위를 펼칠 것을 제안했지만 독립선언문과 경고문 등을 제작하여 인쇄하던 도중에 발각되었고 이후  49일 공주지법 청주지청에서 10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룬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90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인터넷에는 배우 이서진씨의 증조부가 '석주 이상룡'선생이라고 많이 나오는데요.


이상룡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국가원수)로 안도지역의 유학자였지만 국권 침탈 이후 서간도 지역으로 넘어가

이회영,이시영 형제들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합니다. 


당시 이상룡 선생은 엄청난 부를 자랑했지만 오로지 독립을 위해 집까지 다 팔고 만주로 망명했다고 하는데요.

이상룡 선생님은 유언으로 "조선 땅이 해방되기 전에는(내 유해를) 데려갈 생각을 마라. 조선이 독립되면 내 유골을 유지에 싸서 조상 발치에 묻어 달라. 외세 때문에 주저하지 말고 더욱 힘써 목적(우리나라의 독립)을 관철하라." 


라는 말을 남긴 끝까지 일제와 타협하지 않은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이상용 선생의 외아들 이준형 선생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나중에 국내로 돌아오는데요.

이준영 선생은 일제의 지속적인 회유를 받았고 


"일제 하에 사는 것은 수치일 뿐이다" 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을 합니다.

이준영 선생의 손자 이병화 선생 역시 끝까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해방 이후 남로당원으로 활동하다 전쟁중에 병사를 합니다.


즉, 이상룡 선생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이상룡 - 이준형(외아들) - 이병화(손자) - 증손자(한때 고아원을 전전)


반면 이서진의 할아버지인 이보형씨가 서울,제일은행장을 역임했으며 굉장히 부유했다는 사실을 보면

이상룡 선생의 친척(방계)은 맞지만, 직계는 아니며 독립운동 집안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이보형씨의 광복이전 행적은 알려진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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